외국인 남자친구가 고백하는 방법

#1. 우리 무슨 사이야?

외국인들은 사귀자고 고백을 하지 않는다고 들은 적이 있다. 모든 외국인이 그렇다고 하기에는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잘 모르겠다. 오로지 내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자면 나는 내 남자친구에게 고백을 받은 적이 없다. 국제 연애의 시작점에서 나는 홀로 많은 고민을 했었더랬다.

 

우리는 사귀기 전에도 거의 일 년 정도를 알고 지냈다. 서로 얼굴을 보면 인사를 할까 말까 정도의 사이. 내가 몇 번 말을 먼저 걸고 나서부터 관계가 조금씩 진전되기 시작했고 어느날 갑자기 그의 제안으로 함께 카페를 가게 되었다. 그 후로 매일 얼굴을 보고 매일 같이 저녁밥을 먹고 함께 이케아에 가서 그의 침대까지 직접 골라줬는데 나는 그 때까지도 그에게 고백을 받지 못했다. 먼저 카페에 가자고 했고 먼저 멀리 있는 나를 데리러 오고 먼저 침대 골라 달라고 했으면서. 

 

나는 꽤나 용기 있고 당돌해서 내가 먼저 고백을 갈겨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키위와 비니 국제커플의 첫 데이트가 궁금하다면? 

2023.12.14 - [키위와 비니] - [키위와 비니] 영화같은 만남은 아니더라도

[키위와 비니] 영화같은 만남은 아니더라도

반응형

#2. 국제연애는 어려워

그렇게 고백을 받지 못한 채 몇 주를 만났다. 집 데이트를 하며 영화도 보고 서로 요리도 해줬다. 그의 지인들도 만났다.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했는데 데이트가 끝나고 방 침대에 누워 잠을 자려고 하면 그래서 우리는 커플이 맞는건가. 그는 나를 진지하게 만나고 있는게 맞는걸까.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사랑에 빠졌고 고민 회로보다는 행복 회로가 더 빠르게 회전했다. 그리고 그 행복 회로에는 국제 연애니까, 외국인이니까 그냥 이렇게 흘러가듯 우린 커플이 되겠지 하는 생각이 가득 차 있었다. 당돌하게 고백을 갈겨버리려던 기세는 이미 어디에 던져서 묻어 두어 버린 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쇼핑몰 내에 위치한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나오던 중 우연히 호주에서 사귄 나의 일본인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를 보며 누구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남자친구라고 말할 수 없었다. 고백이 뭐라고. 나는 어영부영 대화를 마무리 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앞만 보고 걷는 나에게 남자친구는 물었다. 친구들이 너 남자친구 있는 거 모르는구나.

 

남.자.친.구 라고 했다. 지금 여기 풍악을 울릴 수 있는 분이 계신가요? 있으시다면 당장 울려주세요.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친구들한테 아직 얘기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지만 심장은 커피를 세 잔 연속으로 마시고 잠을 못 잔 것처럼 두근거렸다.

 

#3. 그래서 우리는 언제부터 1일인거야?

그 후로 몇 주가 흘렀을 쯤 나는 그에게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털어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부터 사귀기 시작한 것인지 물었다. 그는 만나기 시작했을 때부터 자신과 맞는 사람이라고 느꼈고 모든 면에서 편안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인 사이로 발전한 것이지 이 날부터 내 여자친구라고 정의 내리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건 너무 어렵다고 투정을 부리는 나에게 그는 말했다. 내 여자친구가 되어줄래? 너무 장난스럽게 이야기 해서 크게 감동을 받지는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만나기 시작한 그 날부터 커플이 되었다고 치고 기념일도 챙기자고 결론을 내렸다. 

 

개인적으로는 친구, 가족 등 주변 사람들에게 서로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하는 가장 큰 시그널이 아니었나 싶다. 다만 글을 쓰면서 그 때를 회상하니 혼자 밤새워 고민하지 말고 우리가 무슨 사이인지 빨리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미 오래 잘 만나고 있기 때문에 여유가 생겨 할 수 있는 생각일 수도.

 

오랫동안 먼저 그를 좋아해서 언제부터 1일인지는 나에게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로 돌아간다면 먼저 고백할 거다. 좋아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