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책 못가는 강아지 1단계: 분노
로지의 견종은 러프 콜리이다. 보더 콜리에 비해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다. 러프 콜리는 TV 프로그램 "래시(Lassie)" 에서 유명해져 이 곳에서는 로지를 데리고 다니면 래시 도그(Lassi Dog)가 맞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목양견이기도 하고 콜리의 피가 흐르는만큼 활동량이 대단하다. 로지는 하루에 두번 산책을 나가는데 한번 갈 때마다 무려 한 시간 동안 걷고 뛰고 날기를 반복한다. 로지아빠도 달리기가 아주 빠른편인데 로지랑 달리기 시합을 하면 금새 따라잡혀 버린다.
로지가 산책을 못 가는 것은 딱 두가지 이유가 있다. 날씨가 정말 안 좋거나 우리 모두 너무 바쁘거나. 얼마전까지 비가 오고 바람이 너무 많이 부는 날이 많아서 산책을 못 간 적이 몇번 있었다. 로지는 평소에 안하던 우다다를 하며 온 집과 마당을 들쑤셔 놓기도 했고 갑자기 와서는 큰 소리로 짖기도 했다. 우리는 이 시간을 크레이지 펍펍(Crazy Pup Pup) 타임이라고 부른다. 아침 산책을 나가지 않은 시간부터 분노 게이지를 쌓아 점심 때 쯤 터트리는 것이다. 에너지를 발산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기 전까지 아무도 이 아가를 말릴 수 없다.
#2 산책 못가는 강아지 2단계: 슬픔
또 어느 비가 오던 달 로지아빠와 키친의 바테이블에 앉아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로지가 보이지 않아 찾으러 갔었더랬다. 로지는 홀로 침실에 들어가 침대에서 창문밖을 보며 고독을 씹고 있었다. 우리는 이 상황이 그저 어이가 없고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해서 저녁에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점심 시간 쯤 분노의 질주를 끝내고 고작 하고 있는게 처연하게 창밖을 보는 것이라니. 이런 순한 강아지가 어디 있을까.
비를 그다지 신경 안쓰는 로지아빠 덕분에 폭우만 쏟아지지 않으면 비가 와도 산책을 가는 편이긴 하다. 하지만 바람이 강하게 불면 위험하기 때문에 절대 산책을 가지 않는다. 이럴 때는 실내 도그 파크라도 주변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다. 강아지와 함께 갈 수 있는 야외 공원이나 바닷가는 주변에 널리고 널렸는데 그래서인지 실내 도그 파크는 찾아볼 수가 없다.
로지는 그날 단단히 삐져 내가 방에서 다시 나올때까지 뒤돌아서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3 결국 산책을 나간 강아지: 행복
우리는 비가 온 다음날이면 땅이 마르기도 전에 로지를 공원으로 데려간다. 진흙을 밟던 흙탕물에서 장난을 치던 일단 데려가고 본다. 로지가 자주 가는 공원으로 향하고 있으면 로지의 엉덩이는 씰룩거리고 발걸음은 빨라지기 시작한다. 공원의 펜스 문을 열었을 때 로지는 온 나무와 풀의 냄새를 맡으며 공원 중앙으로 뛰어간다. 로지처럼 산책하기만을 기다렸던 모든 강아지들과 인사를 끝마치고 돌아온 로지는 그제서야 환한 미소를 보여준다. 만족의 웃음이다. 꼬질꼬질해서 이게 정말 우리 강아지가 맞나 싶을만큼 온 몸에 흙칠을 하고 나서야 로지는 물을 먹으러 달려온다. 목욜을 시킬 생각에 앞이 살짝 캄캄해지지만 로지가 좋아하는 걸 보면 안 데려갈 수가 없다.
첫 산책은 리드줄도 싫어하고 다른 강아지 친구들도 무서워해서 힘들었는데 이제는 지치기 전까지는 집에 돌아가고싶어하지 않는 개구쟁이가 되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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